앞니 잇몸 누르면 아파요 - 플라즈마 신경치료 feat. 내향적인(I성향) 치아
치아도 사람처럼 성격이 있는 것 같다.
치아의 뿌리 안쪽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외향적인 치아들은 격렬하게 고름주머니를 만들어서 나 좀 봐달라고 소리치지만,
링크 : 잇몸에 뾰루지가 생겨서 다행입니다. feat. 뿌리염증 골든타임
내향적인 소심한 치아들은 제대로 표현을 못하고 시름시름 병을 키워나가다가,
수습이 어려운 지경에 와서야 비로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링크 : 하나도 안 아픈데 치료를 받아야 하나 feat. 뿌리염증 신경치료
그러다보니, 보통 소심한 치아들의 예후가 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2년쯤 전의 일이다.
20대 젊은 여성분께서 내원하셨다.
왠지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모습.
차트를 보니, 치과공포증에 체크가 되어 있다.
오랜만에 스켈링을 받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끝에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가끔 앞니를 만지면 약간 불편해요. 특히 잇몸을 누르면 조금 아파요."
경험상, 치과랑 친하지 않아 보이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가볍게 지나가는 듯한 말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치료에 대한 불안감으로, 불편감을 적극적으로 말씀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엑스레이를 미리 찍어놓고, 말씀하셨던 앞니를 체크.
겉으로 볼 땐 별 이상 없어보이는데,
확실히 화살표 부위의 잇몸을 누르면 느낌이 안 좋다고 하신다.
파노라마 사진을 보니, 뿌리끝에 뭔가 보인다.
파노라마에서 보이는 염증은 심한 경우가 많다.. |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CT를 권유드렸다.
CT를 보니,
아이쿠야... 뿌리염증이 주변 치조골을 조용히 녹이는 중이다.
뺨쪽의 뼈는 종이짝같이 남았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딱 저 부위가, 누를 때 아픈 부위 |
잇몸을 누를 때 불편감은 이래서 생겼을 거다.
지금이야, 잇몸을 누르면 조금 불편한 정도지만
이 상태로 계속 놔두면 저 뿌리염증은 점점 커질거고..
그렇게 되면 비수술적 치료로는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잘못하면 앞니를 뽑아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이라면 신경치료를 해서 치유를 도모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환자분께 조심스레 이런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니,
짧은 고민 끝에, 그보다 짧은 답변을 내놓으셨다.
"그냥 발치하고 싶어요."
의외의 대답.
다시 조심스레 이유를 여쭤보니,
옛날 타치과에서 앞니 치료를 받을 때, 앞니 마취가 너무 아프셨단다.
그래서 그 때 이후로, 환자분의 표현을 빌자면, "치과를 끊었다"고 하셨다.
(세상에나... 마취가 얼마나 아프셨으면.... )
차트에 적힌 치과공포증도 이래서 체크하셨나보다.
선택은 환자분의 몫이겠지만,
이제 20대 젊은 여성분이 앞니를 발치하겠다는 말씀에 너무 안타까워 몇 말씀을 덧붙인다.
치과 마취는 최대한 덜 아프게 할 수 있고,
마취만 잘 되면 신경치료는 아프지 않게 진행되며,
마취가 풀리고 생기는 통증은 거의 대부분 진통제로 해결이 된다..
발치도 어차피 마취를 해야하고,
임플란트는 신경치료보다 더 침습적인 치료라 더 아플텐데..
그래도 발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를 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치아라면 아마 그렇게 할 것 같다..
물론 지금 결정하지는 않으셔도 된다는 말로 마무리.
그날은 일단 스켈링만 받고 가셨는데,
얼마 후, 다시 내원하셨다.
치료를 받아보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결심하셨는데,
이게 나중에 안 나으면 괜한 원망을 듣는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짧은 후회가 잠깐 스쳤간다.
(솔직히 이런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해야한다.
정말정말 신경써서 무통마취를 시행하고,
충분히 마취가 되었음을 확인하면서 신경치료를 시작.
뿌리끝에 도달 후, 플라즈마 조사.
무사히 첫날 치료가 끝났다.
신경에 접근한 구멍을 임시재료로 막고나서, 소심하게 여쭤봤다.
좀 어떠셨어요? 많이 아프진 않으셨어요?
거의 안 아팠어요, 치료 받길 잘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마취 풀리고 나서 아플 수 있으니 처방해드리는 진통제 꼭 챙겨드세요.
1주 뒤.
다시 조심조심 무통 마취 후, 이어서 신경치료를 진행.
플라즈마 덕분에 2회만에 신경치료가 끝났다.
보통, 신경치료가 끝나면 크라운을 해야하지만
앞니의 경우에는 그냥 신경치료를 받은 입구만 레진으로 잘 막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 치아는 예후도 불분명하니, 그냥 레진코어로 마무리.
이렇게 3회만에 신경치료와 치아수복까지 마무리 되었다.
이제 기도하는 일만 남았다.
시간이 흘러, 1개월 뒤 경과 체크일.
이제 잇몸을 눌러도 불편한 느낌은 없으시단다.
CT로 확인하니, 애매하다.
그래도 잇몸을 누를 때의 불편감은 없어지셨으니,
희망을 가지고 2개월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후 또 3개월이 흘러, 치료 후 거의 4개월이 지났다.
어땠는지 여쭤보니, 치료받았다는 걸 까먹고 지낼 정도로 괜찮았다고 하신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CT를 확인했는데..
지난 3개월 동안 정말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주셨다.
종이짝처럼 얇아졌던 뺨쪽의 치조골이 두껍게 회복되었다.
뿌리 주변의 염증이 일부 남아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지난 1개월 체크 때 경과가 애매하다보니
치근단 절제술을 해야하나 고민도 했었는데,
다행히 수술적인 치료 없이 잘 치유가 되셔서 나도 한시름 놓았다.
체통을 지켜야하니 대놓고 좋아할 수는 없고,
표정관리를 하며 담담하게 환자분께도 CT를 보여드린다.
발치 걱정은 이제 내려놓으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셨다.
이렇게 표현이 소심한, 내향적인 치아들은 문제가 생겨도 발견이 늦고,
그러다보니 치료도 늦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당연히 예후가 더 안 좋다.
치아는 바로바로 증상을 보여주는 외향적 성격이 낫다.
하지만 내 치아의 성격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알 방법은 없다.
그저 정기적으로 치과에 가서 점검을 받고,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담당의에게 꼭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에 이 분도 잇몸이 조금 불편한 정도라고 그냥 넘어가셨더라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치료와 치유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치아가 내향적이라면, 나라도 외향적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치과에서는.
epilogue) 참고로,
이 환자분께서는 이번 신경치료로 치과 공포증을 극복하시고, 이후 다른 치료도 잘 받고 계신다.
치과에서 말씀도 많아지시고, 약간은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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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의료법 제56조 1항의 의료법을 준수하여 치과의사가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실제 내원 환자분의 동의하에 공개된 사진이며,
동일한 환자분께 동일한 조건에서 촬영한 사진을 활용하였습니다.
치료 내용 : 신경치료, 레진코어
치료 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 : 재신경치료, 발치
치료기간 : 2023.02.01~ 2023.02.22
경과 체크일 : 2023.05.26
개인에 따라 진료 및 치료방법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며,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점을 안내드리고 동의하에 치료 진행합니다.
진료 전 전문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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