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면 충치가 있다는데, 치과마다 진단이 달라요 feat. 무죄추정의 원칙
"열 사람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으면 안 된다."
현대법의 근간인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치과 검진에도 이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열 개의 충치를 놓치면 좀 그렇지만...)
한 개의 무고한 치아가 충치 치료를 받으면 안 된다.
치아는 한 번 삭제되면 재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20대 여성분께서 내원하셨다.
"왼쪽 위에 충치가 있는데, 어떤 치과에서는 치료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치과에서는 없다고 하고..
또 다른 치과에서는 있기는 한데 치료까지는 필요없다고 하더라구요.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왔어요."
충치 진단과 치료의 필요성은 조금 애매할 수 있다.
검진을 하는 치과의사들마다 진료철학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자초지종을 잘 말씀드리고, 차분하게 검진을 시작한다.
(이하 내용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미리 밝힌다.)
기본이 되는 파노라마 사진.
확실히 치아 사이에 충치로 의심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나마 치열이 겹쳐있는 부분은 파노라마에서 안 보인다.
그래도 의심 치아 주변에 충전물이나 보철물이 없다.
이럴 땐 CT가 매우 도움이 된다.
CT를 찍어, 인접면 충치를 찾아보기로 했다.
위쪽 - 상악 : 찾았다. 인접면 충치.
파노라마에서 의심된 #16은 충치가 아니었음 |
그리고 아래쪽 - 하악 : 음.. 이건 조금 의심이 된다.
파노라마에서 겹쳐보였던 #34도 용의선상에 오름 |
CT에서 충치 의심부위로 확인된 치아를 육안으로 보면서 마저 검진을 해보면,
1. #26 치아 : 상아질까지 진행된 충치 - 치료가 필요함
2. #34 치아 : 당장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음. 치실 사용하시면서 정기검진 때마다 경과 체크
치아 사이 잔사는 치실로 제거하니 깔끔해짐 |
3. #36 치아 : 마찬가지로, 치실 사용하시면서 정기검진 때마다 경과 관찰
다행히 CT로 충치 검진이 가능해서
현재, 치료가 꼭 필요한 부위는 한군데로 정리가 되었다.
사진으로 말씀드리니,
환자분께서도 수긍을 하시며 필요한 부위를 먼저 치료 받고,
정기검진 때마다 나머지 부위를 체크 받으시기로 하셨다.
그때까지 치실 사용을 꼼꼼히 하실 것도 당부드림.
충치가 확실한 #26 치아의 치료를 시작.
무통 마취 후, 치료 예정 부위를 눈으로 보는데... 진짜 멀쩡해 보인다.
여기 충치가 있는 게 맞는건지, CT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본다.
CT를 믿고 예상 부위를 삭제하니,
숨어있던 충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조심조심 충치 제거를 이어간다.
하아... 깊네...
깊은 부위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살살..
이제 신경에 근접한 부위라,
수기구(spoon excavator)와 초음파 기구(sonic flex)를 동원해서 마저 충치를 제거.
인접면 충치 치료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바로 인접한 치아(#27) 의 맞닿은 면 충치 체크.
CT에서는 애매했지만, 맞닿은 면에도 충치가 보인다.
지금 치료하면, 옆면에 직접 접근이 가능하므로
말그대로 최소삭제 인접면 레진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환자분께 설명 후 동의를 얻어 #27의 충치부위 삭제 시작.
상아질까지 진행된 충치 확인.
놔두기에는 깊었다 |
충치를 마저 깨끗이 제거하고,
#27 먼저 레진으로 수복.
매끄럽게 polishing을 해주고,
다시 원래의 치아(#26)로 돌아와서,
충치가 깊게 진행되어 자극받은 신경 근처에는 MTA를 먼저 덮어주고
팔로덴트 장착 후, 인접면 레진으로 수복.
이렇게 치료가 일단락된다.
그리고 일주일 간의 경과 체크를 거쳐서,
시림이나 불편감이 없음 확인 후 치료를 마무리.
충치가 의심되었던 나머지 치아들(#34, #36)은,
엑스레이나 육안에서 충치를 확신할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지금 치료를 하기보다는
정기 검진을 통해 꾸준히 경과를 체크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진료가 마무리.
[치료 요약]
1. 충치가 확인된 #26-#27 인접면 충치 :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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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보자.
1. 치료가 필요한 상황
- 인접면 충치가 깊어지면 치아가 어둡게 비쳐 보이기도 하고,
인접면 충치가 넓어지면 치아사이로 검은색 부분이 눈으로도 보이게 된다.
이럴 때는 더 늦지 않게 치료가 권장된다.
눈으로 확인이 어렵다면, 엑스레이(CT, bitewing)의 도움을 받는다.
엑스레이 상에서 상아질까지 충치 진행이 확인되었다면, 더 늦기 전에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 자세한 설명과 예시는 아래 포스팅의 '발견' 파트 참고
링크 : https://www.dentalist.me/2025/03/feat.html
2. 경과를 지켜봐도 되는 상황
- 충치의 존재유무가 의심된다거나..
충치가 있더라도 법랑질에 국한된 초기 우식이라고 판단이 되는 경우라면,
양치질과 치실을 신경쓰면서 관리하다가 정기검진 때마다 체크하면서 치료 시기를 잡는 것이 좋다.
- 실제로 성인들의 법랑질에 국한된 초기 우식은,
관리를 잘 해주면 충치 진행속도가 상당히 느려지거나, 정지우식 상태로 잘 보존되기도 한다.
epilogue
- 정기검진을 깜빡할 수도 있고, 치실을 잘 할 자신도 없는데..
그냥 의심되는 부위를 파고들어가서 충치가 있는지 확인해보면 안 될까?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치아는 한 번 깎아내면 재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충치를 확인을 해보는 대가로 치아의 일부(멀쩡한!!)를 잃는 일은 슬픈 일이다.
이것이 억울한 치아를 만들면 안 되는 이유다.
- 의심이 가더라도 확실치 않다면,
이번에는 훈방조치를 하고, 잘 다독이면서 정기적으로 갱생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억울한 치아를 만들지 않는 모범답안이 아닐까 싶다.
정 불안하면 정기검진 시기를 조금 짧게 잡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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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의료법 제56조 1항의 의료법을 준수하여 치과의사가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실제 내원 환자분의 동의하에 공개된 사진이며,
동일한 환자분께 동일한 조건에서 촬영한 사진을 활용하였습니다.
치료 내용 : 레진치료, 치수복조술
치료 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 : 신경치료, 레진파절
치료기간 : 2024.07.20 (당일치료완료)
개인에 따라 진료 및 치료방법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며,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점을 안내드리고 동의하에 치료 진행합니다.
진료 전 전문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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